달항아리와 같은 일부 감상용 작품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릇은 음식을 담기 위해 존재합니다. 50여년 동안 전통도자를 현대적으로 고급화하여 멋스러운 생활도자기로 선보여온 광주요그룹에서 ‘한식(韓食)’에 관심을 가져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담기는 음식을 고려하지 않은 그릇이란 관객을 배려치 않은 영화처럼 형식에만 매몰되거나 울림없는 공허함을 전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음식문화인 ‘한식’은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백반이나 서민적인 음식으로만 여겨져 왔습니다. 고급 한식문화가 없는 가운데 한식을 위한 고급 생활도자기가 과연 필요할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광주요그룹은 한식을 고급화하고 세계화하는 작업에 일찍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2007년 어느 가을날의 행사는 그런 노력의 결실을 미국의 미식문화를 이끄는 와인업계 VIP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인 셈이었죠.

광주요그룹은 최고의 한식 디너를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서 따로 제작하여 공수한 도자기가 1,000여점에 달했고, 72시간 동안 끓인 육수와 각종 장류, 다양한 식재료들을 준비하여 6명의 요리사가 현지에서 직접 조리했습니다. 40여명을 위한 이날 행사에 소요된 비용이 1억6천만원 정도였으니, 1인당 370만원 정도의 식사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한식의 가치를 알리는데 들어간 비용이니 한끼에 얼마라는 식의 단순계산은 큰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design

참석한 VIP들을 위해 한식 디너의 컨셉을 설명하는 간단한 홍보물을 제작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웰컴카드(Welcome Card)인 셈인데, 행사에 대한 소개 문구를 간결하게 편집한 카드 형식으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자리에 앉으면서 가볍게 잠시 보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버려지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뜻깊은 자리인 만큼, 참석자들에게 그날의 행사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주는 홍보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즐거웠던 그날을 기억하고자 가지고 가고 싶을 정도로 멋진 홍보물이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죠. 물론 디자인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아야 할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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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여러 번의 샘플 제작을 거듭한 끝에 ‘지끈(종이끈)’ 매듭을 사용하는 디자인을 개발했습니다. 한지 공예나 전통 포장에서 사용하는 재료인 ‘지끈’을 사용해 한장한장 수작업으로 매듭짓는 디자인입니다. 손맛을 중시하고 많은 정성이 담기는 한식의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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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디자인에도 한국적인 요소들을 도입했습니다. 색동 이미지의 컬러 바(Color Bar)전통민화 요소들을 영문으로 번역한 소개글과 함께 편집했습니다. 특히 여러 요소들이 제각각 따로 놀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폰트 선정이나 레이아웃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produce

규격 : 210 x 100 mm
수량 : 100부
용지 : 스코틀랜드 아이보리 220g
인쇄 : 양면 8도 옵셋 인쇄
가공 : 양면 무광 적금박
제본 : 2단 접지
기타 : 핸드메이드 지끈 매듭

결과물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제작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납품 수량은 여분을 포함해서 100부 정도인데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 하므로 2천부 이상을 인쇄했습니다. 각각의 공정들을 거칠 때마다 불량이 나는 것을 감안해야 하고, 최소 인쇄수량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쇄가 끝나면 충분한 시간을 건조시킨 후에 금박 가공업체로 보내서 양면에 무광 적금박을 입히고, 제본업체로 보내서 톰슨 재단과 접지를 합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공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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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끈’ 매듭이죠. 이렇게 세심하게 매듭을 짓는 작업을 해주는 가공업체는 없습니다. 수량이 아주 많은 경우엔 어떻게든 업체와 협상을 해볼 수 있지만 이렇게 소량인 경우엔 방법이 없습니다. 직접 하는 수 밖에요. 우선 좋은 지끈을 구하는 것이 먼저라서 서울 시내 곳곳을 다니며 구할 수 있는 지끈은 모두 구입해와서 비교했습니다. 그렇게 선정한 지끈을 넉넉하게 구매해서 밤을 새우며 직접 묶었습니다. 어떻게 묶는 것이 가장 보기 좋을지도 다양하게 연구했는데, 지끈을 손으로 비벼서 어느 정도 풀어지게 만든 후에 적절히 폭을 조절해 가는 방식으로 묶었습니다. 그때는 손에 물집도 많이 잡히고, 급한 일정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한참 후에 돌아보니 즐거웠던 추억이 되었습니다. 디자인 작업을 하다보면 이렇게 직접 마무리를 해야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epilogue

밤을 새워 제작한 홍보물은 다음날 미국으로 보내졌고, 행사장에서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정성스레 준비한 행사였던 만큼 성황리에 치뤄졌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처음 접한 한국 음식의 맛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고, 와인과의 멋진 조화에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한식의 멋스러움과 가치를 알리고자 무려 2년전부터 준비했던 이날의 행사는 여러 언론에 소개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마치 제 일인 것 마냥 뿌듯해서 그동안의 피곤이 가시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분 좋았던 것은 홍보물에 대한 참석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테이블에 놓인 홍보물을 열어보며 참석자들은 매우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많은 분들이 직접 챙겨가시기도 했다니 의도했던 목적이 어느정도 달성된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한식을 현대화•고급화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널리 알리고자 하는 광주요그룹의 노력은 지금도 한남동의 한식당 ‘비채나’를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태가 되는 도자기 부문도 최근 다양한 신제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전통술 브랜드인 ‘화요’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식문화를 넘어서 우리 생활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이어가는 광주요그룹에 진심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 본 작업물의 저작권은 DESIGN NORI 에 있습니다.
* 무단 도용이나 복제는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