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케이스

디자인 작업의 종류 중에서 기업의 로고나 브랜드의 심볼마크를 디자인하고, 그 응용방법과 사례들까지 미리 예상해서 종합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을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줄여서 C.I.(Corporate Identity, 기업 아이덴티티), B.I.(Brand Identity, 브랜드 아이덴티티) 등으로 말하기도 하죠.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기업이나 브랜드의 시각적인 정체성을 구축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리서치하고, 고민하면서 작업합니다. 단순히 로고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명함이나 레터지와 같은 서식류에서 브로셔, 각종 사인물, 패키지, 광고 디자인 형식까지 많은 응용 디자인까지 개발하기도 하죠. 그래서 짧아도 1~2달은 소요되고, 큰 규모의 프로젝트는 여러 명의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이 팀을 이뤄서 몇 년 동안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디자인 개발비용도 다른 분야에 비해서 높은 편이죠. 충분한 경력과 경험이 없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합니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결과물로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먼저 전달되는 것은 명함(Business Card)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홍보하기 위해서 가장 빨리 제작해야 하는 인쇄물이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은 로고 디자인이 확정되면 최대한 빨리 명함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작한 명함을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할 때, 일반적인 명함업체에서 흔히 사용하는 플라스틱 케이스에 넣어서 보내게 됩니다. 명함 크기에 딱 맞게 제작된 기성품이라서 편리하기도 하고, 언제나 급한 일정에 쫓기다보면 박스까지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저 역시 처음 디자인 사무실을 오픈하고 몇 번은 그렇게 기성 명함 케이스에 넣어서 클라이언트에게 보냈습니다.

멋지게 디자인한 명함도 이런 곳에 넣어 전달한다면…

하지만 언제부턴가 손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전문 디자인회사에 아이덴티티 작업을 의뢰했는데, 처음으로 받는 결과물이 동네 명함가게에서 쓰는 박스와 다를 바 없다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좀 아쉬운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안에 담긴 결과물은 전혀 다르다고 해도, 디자인이란 ‘내용’ 못지 않게 ‘형식’도 중요한 법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회사만의 명함 케이스를 디자인 했습니다. 받았을 때의 느낌과 사용할 때의 편의성까지 고려해서 말이죠. 환경을 생각해서 종이박스 형식을 채택했고, 제작 공정이 복잡하지 않으면서 너무 많은 비용이 들지 않도록 다양한 시안을 거쳐서 개발했습니다.

DESIGN NORI의 명함 케이스

일단 큰 형태는 넓직한 사각형의 박스로 결정했습니다. 기존 명함 케이스와 한 눈에 차별화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상단/하단 박스 구조인데, 상단 뚜껑을 열면 박스 내부에 비스듬한 경사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사면으로 인해서 박스에 명함을 넣으면 아래 사진처럼 살짝 기울어진 채로 수납이 됩니다. 일반적인 명함 케이스 보다 훨씬 보기 좋고, 한 장씩 꺼내 쓰기에도 더 편리합니다. 일반적인 두께(200g/m² 이상의 수입지)의 명함 100장이 수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보기에도 좋고, 사용하기도 편리하도록…

재질은 환경친화적인 종이인 크라프트 팩 224g/m²을 사용했고, 검정색으로 1도 인쇄만 해서 회사 로고를 작게 넣었습니다. 일종의 재생지인 크라프트지는 패키지 용도로 많이 사용되는데 두께에 비해서 탄탄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입니다. 내츄럴한 느낌이 강해서 세련된 디자인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환경친화적이거나 핸드메이드 제품 등에는 잘 어울립니다.

이 명함 케이스를 디자인해서 사용한지도 십여년이 넘었네요. 처음 이 케이스에 명함을 담아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했을 때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케이스에 명함을 받아 본 적은 처음이라고, 섬세하게 배려 받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하던 분들도 있었고, 케이스가 달라서인지 명함 디자인까지 더 좋아 보인다는 덕담을 건넨 분들도 있었습니다.

사소한 듯 하지만 남다른 차이,
그런 마음가짐이 조금 더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가능케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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