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선 – 소통에 관하여

소통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잔인한 현실이다.

흔히들 소통의 어려움이란 ‘차이’에서 온다고 한다.
나 혹은 우리와 다른 무언가는 그것의 진정한 의미나 목적이 무엇이든
낫설고도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해와 연관된 부분은 ‘차이’를 넘어서 ‘이기’의 차원에서
방어적이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대 사회의 속성이겠지.
하지만 굳이 자신과 직접적인 이익과 불리를 따질 필요없는 경우에도
‘무관심’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이기’와는 달리
‘차이’ 혹은 ‘다름’은 목적성 없이도 불안함을 만들어 낸다.

그런 불안함 속에서
‘다수’는 자연스럽게 ‘폭력’ 또는 ‘권력’적이 되어가고,
‘다수’와 다른 ‘소수’는 어쩔 수 없이 ‘폭력’적이 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그렇게 어긋나고, 충돌하고…

크래쉬와 바벨은 이런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두 영화는 얽혀있는 여러 사람들의 관계와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Crash / Paul Haggis

미국 사회 내에서 인종 간의 차별을 바탕으로 하는 폴 해기스 감독의 크래쉬.
이미 얽힐 대로 얽혀서 서로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다양한 인종들의 미국인들을 그리고 있다.
작은 지구라고 불러도 좋을 혼돈의 미국 안에서 생존과 이익을 위해 부딪혀 가는 다양한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고, 돌아서서 ‘다른’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주고…

그렇게 충돌하다가 한 젊은이는 죽고, 다른 한 소녀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 죽음은 너무 아쉬워서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한숨이 나고,
그 기적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또 한숨이 난다.

BABEL /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성서의 혼돈을 타이틀로 한 바벨은 좀더 다양한 소통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자 노력한 듯 보였다.
다양한 환경 속의 다양한 사람들의 엇갈림을 여러 언어로 풀어 내면서…

또한 그들 간의 알 듯 모를 듯한 연결 고리들을 통해서,
어느 한 집단의 소통의 문제가 그들에게만 한정적으로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함께 고민하며, 이해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소통의 어려움이 어느 한 집단의 문제가 아니며,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이자,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말이다.
물론 그 문제는 분명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속삭이면서…

The Tower of Babel / Pieter Brueghel the Elder

두 영화 모두 복잡한 관계와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내며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사실적인 연기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해 주는 듯 하다.

이런 “앙상블 액팅”의 작품들은 은은하면서도 오래도록 깊은 울림을 주곤 한다.
한때 로버트 알트만의 스타일로 불리곤 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거쳐 완성되어 가는 듯 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의도를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떨 때는 말 없이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하면 얽혀버린 소통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로 간의 진심을 내 보일 수 있다면 하고…

하지만 가끔씩은
분명하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고 해도,
풀리지 않는 소통의 문제들이 꽤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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