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NORI®
우리 회사의 이름인 디자인 노리(Design Nori)는 순우리말 ‘놀이’를 소리나는 대로 풀어 쓴 네이밍이다. 항상 즐겁게 디자인하고 싶다는 바램을 담은 이름인데, 의미와 로고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설명할 기회를 갖도록 하고… 이번에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명의 ‘무언가’를 소개해 볼까 한다.
순우리말이라는 선입견 없이 노리라는 말의 어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뜻 일본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받침이 없는 일본어 특유의 어감도 그렇고, 노리다케라는 유명 도자기 브랜드처럼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이 실제로 일본에 있기도 하다. 여러가지 뜻이 있겠지만, 흔히 일본어로 ‘노리(海苔 のり)’가 김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김밥을 쌀 때 사용하는 해조류인 먹는 김 말이다. 그러니까 별다른 정보 없이 우리 회사의 이름을 일본인들에게 소개하면 ‘디자인 김’ 회사로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일본에 ‘디자인 김’, 정확히 말해서 Design NORI 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디자인 김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
우연히 구글에 design nori를 검색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위와 같은 이미지를 보게 되었다. 정교한 문양을 내서 컷팅한 김으로 만든 김밥 이미지였는데, 일본에 정말 디자인한 김이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교한 퀄리티하며, 심플한 디자인의 패키지까지 정말 제대로 디자인된 김이구나 싶어 감탄했고, 심지어 영문 제품명까지 Design NORI로 우리 회사이름과 동일해서 신기한 마음에 관련 자료들을 검색해 보았다.
처음 선보인 다섯 종류의 Design NORI®
2012년 선보인 Design NORI®는 일본 이바라키 현(茨城県)에서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우니모 김가게(海野海藻店 Unimo Seaweed Shop, 우니모 카이소우텐이라 읽는다)에서 세계적인 광고 에이전시 I&S BBDO에 의뢰하여 개발한 디자인 김이다. 롤 스시에 사용되는 종이처럼 얇게 건조한 김에 레이저 컷팅으로 문양을 가공한 것인데, 벗꽃이나 귀갑문(거북이 등문양) 같은 다섯 가지 일본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단순화해서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레이저 컷팅 과정에서 정교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두께와 특성을 시험하여 최적의 재료를 만들어 냈다는데, 놀라울 정도의 정교한 문양으로 만들어진 롤 스시를 보고 있자니 먹기가 아까울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심플함이 돋보이는 Design NORI®의 패키지 디자인
사실 이 프로젝트에는 약간의 뒷얘기가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을 덮친 대지진과 츠나미 이후, 김이나 미역 같은 해조류를 판매해 오던 우니모 김가게에서는 해조류에 대한 관심과 판매를 높이고자 Design NORI®를 개발하게 되었다. Design NORI®는 츠나미와 뒤이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바로 그 지역, 미야기 현(宮城縣)의 산리쿠(三陸) 지역에서 양식된 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니모 김가게가 위치한 이바라키 현도 후쿠시마와 인접한 지역이기도 하니 여러모로 큰 타격을 입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Design NORI®는 거대한 재해를 겪고 난 후, 뼈를 깎는 재건의 노력 중 하나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만들어진 Design NORI®는 19세기 일본의 스텐실 회화를 주제로 도쿄의 미츠비시 이치쇼칸 미술관(Mitsubishi Ichigokan Museum)에서 열린 Katagami Style 전시를 통해 전시되었다. 참신한 기획과 잘 표현된 디자인에 대해 좋은 평가가 이어지면서, 2012년 일본 굿디자인 상을 수상하고, 클리오 어워드와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 런던 인터내셔널 어워드 등 저명한 디자인 관련 상들을 다수 수상하며 꽤나 화제를 모으고 있다.
Design NORI®가 출품된 Katagami Style 전시의 포스터
Design NORI®는 장당 840엔의 가격으로 개별 포장되어 판매되는데, 가공의 까다로움으로 아직 대량 생산은 하고 있지 않으며 직매장이나 전시가 이루어 지는 전시장에서만 제한적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가로x세로 3cm 크기의 미니 버전인 Design NORI® Petit를 선보이기도 했고, 반복되는 패턴이 아니라 하나의 큰 그림을 새겨넣은 한정판을 발매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수량 한정이라서 판매도 잘 되고 있는 듯 하다.
미니 사이즈의 Design NORI® Petit와 음식에 적용한 예
음식 재료 자체를 디자인으로 멋지게 표현해 낸데 대한 칭찬은 여기까지 하고…
Design NORI®가 큰 피해를 입은 현지인들의 눈물 겨운 재건 노력의 산물이긴 해도 일본 해산물에 대한 근본적인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저 잠깐의 화제가 되는 것 외에 실질적인 매출 증대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동일본 지역의 해산물에서 대량의 방사능이 확인되었다는 기사나 소문들이 최근까지도 끊이지 않는 실정이니 말이다. 보기에는 너무나 예쁘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처음 Design NORI®를 알게 되었을 때, 멋진 시각적 표현에 감탄하며 자료를 찾아봤지만 해당 지역의 김으로 제작되었다는 문구 외에 방사능에 대한 안전성을 언급한 글은 전혀 찾을 수 없어서 의아했다. 심지어 칸느 광고제에 출품한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에도 현대인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포장을 개발했다고 설명하고 있을 뿐인데, 해당 지역 해산물에 대해서 대중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믿고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안전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안전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지역의 먹거리를 디자인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그저 외부에 보여지는 부분에만 촛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쁜 모양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기 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끌어 내는 것이 더 바람직한 대처가 아닐까.
예를 들어서 방사능 수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줘서 안전함을 소비자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포장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예전에 가장 맛있는 온도를 알려준다고 했었던 맥주의 온도 표시 마크나 축적된 전기의 양을 표시하는 건전지처럼 제품의 방사능 수치를 표시하는 포장지를 만들 수 있다면 제품의 신뢰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는 생산과 유통, 판매 전 과정에 방사능 측정 설비를 갖추고 철저한 관리를 하는 제품들을 선별하여 방사능 안전 인증 마크 같은 것을 발급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우와 같은 중요 축산품들은 DNA 검사를 통해 원산지를 식별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데, 그것 이상의 철저한 관리와 감독을 한다면 해당 지역 식품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도 조금씩 누그러지지 않을까. 물론 그 어떤 것도 쉬운 작업은 결코 아닐 것이다. 많은 노력과 비용, 시간이 소요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동일본의 먹거리들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과 우려는 손쉽고 값싼 해결책으로 해소될 수준의 것이 아니다. 한 기업이 추진하기에 버거운 작업이라면 공동 투자나 자치단체, 국가 등이 나서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일본에 필요한 것은 Good Design 마크가 아니라 Free Radiation(방사능 없음) 마크가 아닐까 싶다.